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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버려져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고등학생 김주열군의 죽음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듯이,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87년 6월, 박종철군과 이한열군의 죽음은 철권통치를 꿈꾸던 제5공화국에 6.29선언이라는 백기항복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격렬한 시위끝에 경찰에 쫓긴 1천여명의 학생들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농성을 계속했고, 정부에서는 강경진압이냐, 해산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학생들을 격려하는 대자보를 써붙이기도 했고 도시락과 용돈을 건네주었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사회를 열망하는 마음을 시민들이 직접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41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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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가 경호 차량을 타고 당당한 모습으로 청와대에 도착한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노 당선자를 맞은 전두환은 자신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자격으로 국정에 관여 할 뜻을 밝힌다. 게다가 퇴임 전에 군 인사까지 단행 하겠다고 한다. 전두환은 조기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공천권까지 행사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노태우는 공천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며 이를 막을 방법을 모색한다. 

    김윤환, 최병렬은 노태우에게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5공과의 단절이 불가피하다며 언론에서 새마을운동본부 비리를 문제 삼고 있는 이번 기회에 전경환을 구속시켜 단절의지를 보여야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노태우는 언론과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전경환을 구속시키고 전두환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4.26총선은 노태우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역사상 최초로 여소야대의 국회를 탄생시켰고 5공비리와 광주문제는 정국의 최대이슈로 부상하게 된다. 

    전두환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시를 밝히지만 노태우는 시기가 좋지 않다며 거절한다. 

    노태우의 순방 기간 중에 정호영이 전두환을 찾아가 잠시 서울을 떠나 있으면 모든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겠다며 떠나 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전두환은 완전한 5공 청산을 약속받고 백담사로 떠난다. 하지만 당초 노태우의 약속은 국민의 분노와 야권의 공세에 밀려 지켜지지 않았고 전두환은 2년이 넘는 세월을 백담사에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89년 12월 전두환은 국회 증언대에 서게 된다. 

    정국의 주도권이 야권으로 완전히 넘어간 여소야대 정국에서 노태우는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90년 1월 3당 합당을 이뤄내지만 이것은 문민정부 탄생의 발판이 된다. 이는 5공인사들에겐 또 다른 역사의 가시밭길을 예고하게 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40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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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버려져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고등학생 김주열군의 죽음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듯이,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87년 6월, 박종철군과 이한열군의 죽음은 철권통치를 꿈꾸던 제5공화국에 6.29선언이라는 백기항복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격렬한 시위끝에 경찰에 쫓긴 1천여명의 학생들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농성을 계속했고, 정부에서는 강경진압이냐, 해산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학생들을 격려하는 대자보를 써붙이기도 했고 도시락과 용돈을 건네주었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사회를 열망하는 마음을 시민들이 직접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9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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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자는 전두환에게 노태우를 대통령후보로 내세우는게 마음에 들지 않고 전두환은 그런 이순자를 안심시킨다.

    노태우는 김옥숙에게 자신이 대통령이 될거라고 호언장담을하며 고생이 끝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옥숙은 왠지 불안해한다.

    용팔이는 이용구의 지시대로 야당 창당을 막기위해 당사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해놓는다. 이런 사태에도 위에서 지시를 받은경찰들은 모른채 넘어간다.

    안기부와 신민당의원들까지 합세한 창당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통일민주당이 출범한다. 
    국회의원 66명을 보유한 제1야당이 된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총재는 취임사에서 직선제 개헌을 위한 전면투쟁을 선언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8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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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언이 노태우에게 장세동을 견제하기 위해 정호용을 내무장관에 앉히자고 건의한다.

    이춘구는 전두환에게 정호용을 후임 내무장관에 추천하지만 전두환은 옛일을 떠올리며 정색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노태우의 설득으로 정호용을 내무장관에 임명한다.

    장세동은 전두환에게 대통령 후계구도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전두환은 자신의 내각제 시나리오를
    장세동에게 말해준다.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후계구도에 관한 한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 던 전두환은 공개석상에서 노태우를 후계자로 삼을 것임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다. 후계자로 지명받기 위해 7년여를 철저한 몸낮추기로 일관해온 노태우는 감격해 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7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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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안본부 남여동 분실에서 박종철(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다.

    장세동은 이학봉을 통해 김윤환이가 차기대권으로 노태우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이 사실을 장세동은 전두환에게 보고하고 노태우에게 즉각 경고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전두환은 자신이 노태우에게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고, 허문도의 생각대로 안기부를 통해 김윤환을 겁주기로 한다.

    장세동은 노태우에게 전화해 김윤환이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해주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6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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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댐 물폭탄 시나리오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던 전두환은 학생운동이 점점 확산되자 비상계엄을 고려한다. 전두환이 국면 전환을 위한 중요조치를 곧 내릴 것이라는 정보를 접한 김대중은 제2의 광주를 또다시 만들 수는 없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대통령이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한다.

    전두환은 안기부로부터 홍콩에서 납북미수사건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여간첩이 남편을 유인해 납북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윤택식의 단순 살인사건으로 밝혀진다. 안기부가 사기꾼의 거짓말에 속고 만 것이다. 난처한 입장에 빠진 안기부장 장세동은 전두환에게 독대를 청하고는 이 사건을 금강산댐과 같이 정국 전환용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보고한다.

    결국 이 사건은 장세동의 시나리오대로 여간첩 수지김의 납북미수사건으로 알려지고 살인자 윤태식은 보안사에 철저한 세뇌 교육과 보안 교육을 받은 뒤 방면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5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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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여당의 총선패배는 노태우에게 후계자로 가는 길목이 되었으나, 개각으로 장세동은 전두환의 확고한 정치적 신임를 받게되고 또한 경질이 예상되었던 노신영에게 총리직을 맡김으로써 전두환은 차기후계 구도를 자연스럽게 노태우-노신영-장세동 라인으로 형성한다.

    또한 전두환은 예상 밖의 신민당 총선승리로 정치규제자들의 해금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것을 우려해 전면적인 해금조치를 단행. 이로 인해 김영삼과 김대중은 정치적으로 부활하며 이들에 의해 야권통합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한편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80년 광주 미문화원 방화 사건과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뒤이은 것으로 광주문제가 학원가의 최대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985년 이후, 광주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대학가와 총선 1주년을 맞아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새롭게 탄생한 신민당은 전두환의 영구집권을 막기위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추진 1천만서명운동을 시작하며 전두환을 양면에서 압박한다.

    곧이어 부산 광주 대구에서 개헌추진대회가 연달아 열리면서 개헌 열기는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자 민중혁명을 우려한 5공 세력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건국이후 최대의 사기극 금강산땜 조작사건을 꾸미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4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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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이 일해재단의 성금 모금으로 부담이 크다는 불만들이 나오자 전두환은 곧 본보기로 국제그룹의 은행여신 865억지원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노태우는 총선에 서울 서대문구 출마를 전두환에게 권유받지만 낙마를 염려해 전국구 지원을 박철언과 검토한다.

    은행여신 지원 동결로 부도처리 위기에 놓인 양정모는 일전에 기업을 죽일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전두환의 이야기를 상기하고 위기를 모면하려 동분서주하지만 진퇴양난으로 미국에 있는 아들의 사고사 소식을 듣게된다.

    한편 민추협이 총선에 대비 김대중의 귀국을 추진한다고 하자 전두환은 부산의 최고기업 국제그룹의 문제는 잠시 총선뒤로 미루기로 한다.

    전두환은 신한민주당의 기세를 잠재우기 위해 총선날짜를 겨울인 2월12일로 잡았고,신한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한달도 안 남겨둔 상태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신당인 신민당이 민정당과 민한당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조각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선거결과는 민정당이 총 148석으로 과반수를 차지했고 신한민주당이 67석으로 제1야당이 된다.

    전두환은 부산의 총선거구 중 5개가 신한당이 당선되자 부산에서 양정모 선거활동의 부진을 탓하며 국제그룹의 공중분해를 명령하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3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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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노신영과 이범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남아 대양주 6개국 순방의 첫 방문지로 미얀마(버마)를 선택한다. 1983년 10월 9일, 첫 방문지인 미얀마(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북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전두환은 서석춘, 이범석, 김재익 등 경제, 외교 테크노크라트들을 일거에 잃는 큰 타격을 입는다. 노태우는 이번 아웅산테러로 장세동과 노신영의 경질을 예상하고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전두환은 장세동과 노신영을 유임시키고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김영삼과 김상현은 민주세력의 힘을 모으기 위한 민추협의 발족에 합의한다. 노신영은 이를 전두환에게 보고하고 김영삼의 최측근인 최형우를 매수하는 방해공작을 펼친다. 하지만 민추협은 84년 5월 18일 정식 발족한다. 

    전두환은 퇴임 후 차기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일해재단을 만들기로 하고 재단기부금 모금에 적극 나선다.

    평소 전두환 정부의 부당한 강제성금 요구에 불만을 갖고 있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일해재단 기부금과 관련해서 최순달 재단이사장에게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다. 결국 이것이 국제그룹을 그룹해체로 까지 몰아가는 빌미로 작용하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2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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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그룹의 콘도사업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명성에 전두환의 장인인 대한노인회 이규동 회장이 관련돼 있다는 설이 나돌기 시작한다. 명성의 자금출처를 캐기 위해 국세청이 직접 나선다. 사건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박철언은 노태우에게 내무부장관 사퇴를 권유한다. 

    효실의 구속 사실을 접한 선남은 구치소로 효실을 찾아간다. 효실에게 여공 태순의 투신 소식을 들은 선남은 더 큰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선남은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는 보안사 요원에게 효실을 풀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노태우의 사임의사를 들은 전두환은 장세동에게 앞으로 뭘 믿고 맡기겠냐며 노태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다. 노신영은 전두환에게 김영삼의 단식이 재야를 결집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며 이젠 김영삼을 살릴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진언한다.

    전두환은 권익현을 불러 연금해제라는 협상카드로 김영삼 측과 협상을 시도하고 한편으로는 김영삼을 강제 입원시켜 몸 상태를 체크하는 양면전술을 펼친다. 

    김동겸(상업은행 대리)의 집이 압수수색 당하면서 명성의 실체가 들러나게 된다. 김철호의 검거 후 검찰은 김철호가 이규동과의 단순 접촉을 허장성세로 이용했다는 답변으로 권력배후설을 잠재웠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1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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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노신영, 노태우, 정호영 등 주요 측근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자리를 마련한다. 이 자리에서 학생운동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전두환은 박준병 보안사령관에게 획기적인 방법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대학 캠퍼스, 학보사 기자 선남이 광주학살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처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전단지를 뿌리자 학내에 들어와 있던 사복경찰이 선남을 쫒는다. 결국 선남은 3대 독잔데도 불구하고 군에 강제 입영된다. 

    83년 5월 중공민항기 사건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외교관례를 잘 아는 노신영 안기부장을 책임자로 앉혀 군의 지휘를 맡긴다. 장세동은 군의 반발과 사기문제를 걱정한다. 박세직을 대동하고 국방부로 간 노신영은 분명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김윤호 합창의장 등의 반발을 잠재우고 군을 직접 지휘한다. 이는 군과의 관계에 명백한 선을 그음으로써 전두환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신호탄이 된다. 

    강제 입영돼 군복무 중이던 선남이 어느 날 보안부대로 불러간다. 선남은 보안사에서 학내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하며 심한 고문을 당한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선남은 휴가를 나와 학보사에서 함께 일했던 효실과 영태를 접촉하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30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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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자신 몰래 노태우, 장세동, 허삼수, 허화평 등이 장영자 사건으로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고 그들을 한명씩 따로 불러들인다. 장영자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은 장세동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경호실의 위상을 높이고 노신영에게는 안기부장을 맡긴다.

    한편 김재익은 '금융실명제' 정책을 제안하고 전두환은 소신껏 추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측근들과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전두환은 금융실명제의 강행과 번복을 수차례 되풀이하다가 포기하고 만다.

    노신영과 노태우 등 장관급 인사들을 불러 모은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허삼수는 금융실명제와 김대중을 미국으로 보내는 일 등 자신들에게는 모든 정보가 차단됐다며 내쫓길 위험에 처한 것을 감지한다. 

    전두환은 허화평을 대구시장으로, 허삼수를 철도청장으로 임명하며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배우고 돌아오라고 한다. 허화평은 전두환의 진심을 알고 싶다며 나라를 떠나라고 한다면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하는데...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9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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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5월 4일, 장영자는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전두환의 견제로 입지가 좁아진 허화평과 허삼수는 허문도를 설득해 전두환의 친인척 비리를 언론에 흘려 전두환을 압박한다.장영자 사건이 터지자 허화평은 이규광장군의 구속을 주장하고 나선다. 하지만 이학봉은 무턱대고 결백을 밝히려고 나설 일이 아니라며 자칫 각하께 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낸다. 

    장영자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잡혀오지만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한다.

    내무부장관이 된지 한 달도 않되 장영자 사건이 터지자 노태우는 박철언과 함께 대책을 논의한다. 박철언은 누군가 고의로 이 사건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며 허화평과 허삼수를 의심한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이규광 장군의 구속으로도 여론이 죽지 않고 번지자 전두환에게 모든 친인척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학성과 같은 주변 인물들을 이용해 전두환을 압박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8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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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노태우를 만나 손발이 꽁꽁 묶인 기분이라며 청와대 생활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노태우는 모든 보고가 허화평과 허삼수를 거쳐 올라오는 것이 문제라며 적당한 기회에 허화평의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어들인 장영자는 투자금액을 두 배로 올려 다시 주식을 사들인다. 돈에서만큼은 청와대 안주인보다 파워가 셌으면 좋겠다며... 

    허화평과 허삼수는 전두환이 자신들보다 김재익과 같은 청와대 전문가 그룹과 가까워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김재익의 뒷조사를 하지만 별다른 약점을 찾지 못한다. 박세직이 사석에서 ‘각하 다음은 나’ 라는 발언을 했다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은 허화평과 허삼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세직의 예편을 지시한다. 이것은 일벌백계의 사례로서 위력을 발휘했다. 

    주식폭락으로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해 곤경에 처한 장영자는 일신제강 어음 100억을 들고 공영토건 변강우 회장을 찾아간다. 돌아오는 어음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며 변회장을 위협하고 어음을 더 끊어달라고 요구한다. 

    전두환은 허화평을 정무수석으로 발령 낸다. 허문도는 허삼수에게 이것은 각하 스스로 통치권 명확하게 하겠
    는 의지로 봐야 한다며 권력은 나눠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7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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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화평이 올라온 보고서를 들고 내용이 부실하다며 장관을 질책한다. 장관은 고압적인 허화평의 태도가 기분 나쁘지만 참고 돌아선다. 
    허화평의 전행에 대해 들은 김재익은 이학봉에게 허화평의 위세가 지나친 것 같다며 언제 좋게 얘기 한번 해달라고 부탁한다.

    장영자는 대화산업 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철희를 회장에 앉힌다. 자신은 명예회장의 직함으로 공영토건 변태수 회장을 만나 융통 가능한 현금 5백억이 있다며 대출을 조건으로 어음과 주식의 내부정보를 요구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학봉에게 장영자와 관련한 보고가 올라오지만 배후에 이규광이 있다는 것과 어음이 기업측에서 정상적으로 발행된 것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조치를 내리지는 못하고 중앙정보부에 보고한다. 

    장영자는 이철희와의 초호화 결혼식을 통해 자신의 부와 최고 권력자에게까지 닿는 인맥을 과시하고 이것을 사업에 활용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6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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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실보좌관 허화평, 사정수석 허삼수, 민정수석 이학봉, 공보담당 허문도 등 전두환은 보안사 핵심참모들을 그대로 옮겨 청와대진용을 짜고 외무장관에 노신영, 경제수석에 김익재를 임명한다. 

    노신영은 전두환에게 우리 경제의 미국의존도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김대중 사형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줄 것을 건의한다. 전두환은 노신영의 설명을 듣고 수긍하는 모습이다. 

    허문도는 전두환과 노태우, 정호용을 상대로 언론통폐합의 필요성과 지금이 그 적기임을 설명한다. 하지만 노태우와 정호용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더이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듣고만 있던 전두환은 회의직후 허화평을 통해 최대한 문제점을 없애는 선에서 언론통폐합 안을 만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80년 9월 17일 김대중의 선고공판이 열린다. 김대중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방청석의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애국가를 합창한다.

    권정달은 신당에 참여할 정치인 포섭에 나선다. 황낙주를 회유 협박하고 신민당 대변인까지 했던 박권흠은 김영삼을 떠나 전두환 밑으로 들어간다. 

    미국 40대 대통령으로 레이건이 당선되자 전두환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모정의 거래를 준비한다. 전두환은 언론통폐합을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자주국방과 핵개발 포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백악관 방문이라는 선물을 받아 국제사회에서 정권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친다.

    81년 2월 25일 체육관 선거에서 90.2%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은 그해 3월 3일 제5공화국 정권을 출범시킨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5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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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 창당 작업의 모든 실무를 맡고 있는 권정달이 거대여당과 관제야당을 만들어 구색도 갖추고 기존 야당인사들을 포섭하는 방안을 전두환에게 제시한다. 전두환은 권정달의 생각과 일하는 태도에 만족을 느끼고 허화평과 허삼수의 제안대로 신당 사무총장자리에 권정달을 내정한다. 허화평과 허삼수의 공작에 자신의 입지가 좁아짐을 느낀 노태우는 뭔가 방법을 찾지만 답답하다. 

    73년 김대중이 해외에서 펼친, 반독재 반유신 활동이 신군부에 의해 간첩활동으로 둔갑된다. 법정에 선 김대중은 검찰조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신문을 계속해서 거부한다.

    정기용(군검찰)은 해방직후 김대중의 보도연맹 활동과 곽동의에 의해 한민통(한민족통일연합) 의장으로 추대된 사실을 들어 국가보안법 제1조 제1항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죄 위반이라며 사형을 주장한다. 군검찰 조사에서 사형은 피하게 해보겠다는 정기용의 말을 믿고 모든 협의사실을 인정했던 김대중, 그 진술서가 결정적 증거자료로 제시된다. 김대중은 신군부의 제거공작에 보기 좋게 말려든 것이다.

    브루스터는 전두환을 만나 글라이스틴 대사가 김대중의 고발 내용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며 조만간 현실적인 답을 마련하라고 귀띔한다. 전두환은 즉시 보안사로 가 대책을 강구한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4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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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화평과 허삼수는 집권 이후 신당에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와노태우를 견제하기 위해서 새 당의 사무총장으로 권정달처장을전두환에게 적극 권유한다. 그러나 허화평과 허삼수의 기를 꺾기위해 권익현이나 김윤환을 새당의 사무총장으로 앉히자고 노태우가 언급한 말이 떠오르면서 미덥지않게 얘기를 듣고 넘어간다.

    전두환은 이학봉에게 믿음의 뜻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자리를 맡길려고한다. 그러면서 이학봉에게 허화평과 허삼수처럼 설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노태우는 박철언의 계획대로 허화평이 청와대에 들어가기전 보안사 회의실에서 보안사와 중정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허화평과 허삼수에게 자신이 2인자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3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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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과 신군부측은 신당 창당자금으로 정부예산과 정보부예산 200억을 끌어오는 등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들어간다. 허화평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공화당을 해체시키고 야당 인사들을 포섭해야한다고 하자 전두환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분위기를 간파한 노태우는 국민이 원하는 건 안정이라며 허화평과 허삼수의 주장을 힘으로 누르고 자신의 입지를 확인시킨다. 

    한발 더 나아가 노태우는 신당에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두환에게 신당의 사무총장으로 권익현과 김윤환을 추천한다. 그러나 전두환의 핵심 참모인 허화평과 허삼수는 집권 이후 신당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노태우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권정달이 신당에 사무총장이 돼야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한다.

    보안사의 지시를 받은 군 검찰관 정기용은 김대중에게 사형은 면하도록 해 보겠다며 모든 혐의 사실을 인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하기 위해 치밀하게 짜여 진 신군부측의 계략이었다.
  • O: 제5공화국 - 에피소드 22 CNTV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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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봉과 정기용(군검찰부장)은 김대중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논의한다. 정기용은 김대중에게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1조 1항의 적용은 막아 보겠다며, 빨른 수사진행을 위해 모든 협의사실을 인정하라고 한다.

    전두환의 부탁을 받은 김정렬은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하야를 설득한다. 최규하의 하야 결심이 전해지자 전두환과 신군부측은 환호를 지르며 기뻐한다.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자고 한다. 하지만 장세동은 장차 전두환의 정적이 될 수도 있는 노태우와 정호용을 견제하며 군을 지키겠다며 충성을 다시 한 번 맹세한다.

    청와대 입성을 코앞에 둔 전두환과 신군부측은 김영삼의 거취 문제를 놓고 고심한다. 결국 여자관계와 정치자금 등 김영삼의 약점을 잡아 우회적으로 협박, 1980년 8월 13일 김영삼의 정계은퇴 선언을 이끌어 낸다. 

    전두환은 자신의 전역을 축하하는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강창성 보안사령관에 의해 하나회 전체가 제거당할 뻔 했던 일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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