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취한 뇌물이 자그만치 780관
대명률이 정한 사형선고 기준은 장물 80관이니
사형을 열 번은 구형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방화 사건의 결정적 단서인 초석이 김도련 상단에서 발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김도련, 장원만 등은 체포되고 조말생의 비밀장부가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조말생은 김도련 일당의 불법행위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챙겼을 뿐 아니라 매관매직, 이권청탁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모았다. 세종 8년의 조말생 장죄사건. 뇌물의 액수만으론 사형을 열 번 구형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의 병조판서 조말생이라는 자,
우리 대명에 절대충성을 바칠만한 인사던가?
의금부 제조 맹사성은 즉각 조말생 체포령을 내린다. 하지만 조말생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의 집에서도 병조에서도 그 날밤 이후 그의 행적을 아는 이는 없다. 황희, 정인지 등 세종의 측근들은 불안하다. 또 다시 정보가 샌 것인가? 방화사건의 배후로 자신이 지목됐음을 알고 사전에 피한 것인가? 그렇다면 병권을 장악한 이자의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 군사를 동원해 조말생 직속의 병력부터 먼저 쳐야하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내란이다. 도데체,,, 조말생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