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선조 앞에서 바다에서 적을 맞아 단 한번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수군 폐지의 명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한다.
조정은 이 일로 다시 한 번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건저문제로 근신중인 광해군은 선조를 찾아가 어렵게 얻은 신하 류성룡과 이순신을 이렇게 쉽게 버리는 과를 범하지 말 것을 간곡하게 청한다.
선조는 이순신을 불러 단 한번이라도 수군이 적에게 패하는 날 이순신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목숨도 거둘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수군 폐지의 명을 거둔다.
한편 나대용은 거북선의 개판 무게를 감소시킬 방도를 찾아내고, 임진년 4월 12일.
조촐하게 귀선 진수식이 거행된다.
최강 수군의 염원이 담긴 거북선의 위용을 보며 전라좌수영 장수와 군사들 모두의 눈이 젖어드는데..
이튿날 700여척의 일본 전함이 부산포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다.